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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역사] 이교도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의 혼합

타타덴 2022. 7. 24. 09:45

하이켈하임 로마사입니다.

이번엔 이교도의 문화와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혼합이 되었는 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이교도의 교수 활동을 금지한 6세기에는 사실 이미 그리스도교가 이교의 공식 사상과 문학을 완전히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두고 있었습니다.

이교도의 문화로 만들어진 문학 장르와 규칙(문법, 수사)들이 로마 제국의 보편적인 문화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리스도교인들도 대개 같은 학교에서 이것들을 배웠기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불가타를 번역한 성 히에로니무스의 경우 밤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 자신을 보고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 키케로주의자 아니냐고 꾸짓는 꿈을 꿀 정도로 키케로의 라틴 학문에 깊이 심취해있기도 했었습니다.

북아프리카 프톨레마이스의 주교 키레네 시네시우스는 개종하기 전에 히파티아에게 신플라톤주의를 배웠으며, 그가 남긴 무수한 설교들과 편지들, 찬송 시, 논문들은 대목마다 고전에서 교육받은 흔적들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이교 학문과 그리스도교 신앙이 가장 복합적으로 혼합된 가장 좋은 예로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꼽는데요. 사고와 문체 면에서 키케로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그는 방대한 분량의 편지, 설교, 주석들을 남겼는데, 이 글에서 이교 고전 문학과 철학에서 영향 받은 흔적이 도처에서 보인다고 하네요.
그가 쓴 책으로는 키케로에 심취한 애송이 학생에서 마니교도로, 신플라톤주의자로, 그리고 마지막엔 세례받은 그리스도교인으로 이어진 지적, 영적 과정을 되짚는 고백록이 있다고 합니다.
또 410년 알라릭의 로마 약탈로 로마 상류층 이교도 난민들이 아프리카로 밀려들어오면서 아프리카의 정통파 가톨릭 교회하고 이들이 종교적으로 갈등하게 되는 상황이 있었던 듯한데, 이 때 쓴 신국론이라는 책도 있다고 하네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들을 논박할 때 그들의 고대 신화와 역사관들을 체계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그리스도교적 실재관을 논증할 때 이교도들과 공유하던 개념을 기초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이교 문화는 그리스도교에 흡수되고, 완전히 녹아들어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와 그 이후까지 영향력을 보존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