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켈하임 로마사입니다.
18세기 이후, 학자들은 로마 멸망의 원인을 당대의 불안이나 지적인 유행에 편승하여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저자는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을 단 한 가지의 원인만 찾으려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또 로마가 멸망이라고 할만큼 급작스러운 붕괴는 없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주변과 상호작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형되는 기나긴 과정을 거쳤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동쪽의 로마의 경우 이후 또 다른 천년동안 존속하기도 했고요.
20세기 초 인기가 있었던 로마 멸망의 원인은 인종차별적인 의견이었습니다. 초기의 로마인들이 동방에서 온 열등한 인종과 혼합되면서 생물학적으로 좋지 않아졌다는 것인데요. 이 해석은 당대의 반유대주의를 반영했습니다.
서방이 해체된 이후 천년동안 살아남은 건 오히려 열등한 인종들이 왔다고 하는 제국의 동쪽이었습니다.
또 다른 타당성 없는 의견으로는 납중독이 있습니다.
납으로 만든 상수도관을 쓰다가 너무 많은 납을 흡수해서 죽었다는 것인데요. 이 설을 주장한 학자들은 부적절하게 선정된 유골을 분석했으며, 이 유골이 묻혀있는 동안 외부의 납이 얼마나 유골로 스며들었는 지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극히 드문 예를 제외하고는 수도관이나 부엌 용구 때문에 납이 치명적인 해를 끼칠만큼 흡수되기는 어려웠다고 하네요.
다른 의견으로는 토양 황폐화가 있습니다.
제국의 농업 경제가 토양 황폐화로 망했다는 것인데요. 이 의견도 경작 가능했던 전체 토지에 비하면 황폐화된 토지는 미미하였다고 보네요.
다른 의견으로는 기후 변화가 있습니다.
이 설은 제국 말기 로마와 같은 위도에서 자라고 있던 캘리포니아 아메리카 삼나무들의 나이테를 연구한 결과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요.
다른 대륙이기 때문에 기후 변화가 로마 제국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지는 좀더 많은 논의와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계급 투쟁이 있습니다.
기원전, 재산을 어느정도 가진 평민들로 구성되었던 로마 군대가 나중에는 점점 가난한 농민들로 구성이 되었는데, 이들이 혁명과 내전을 일으키며 약탈을 일삼아 해체 원인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허나, 군인들이 계급 투쟁을 벌였다기엔 계층 상관없이 죄다 약탈하고 살아서 계급 투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네요.
다른 의견으로는 로마 군대의 야만족화를 들기도 합니다.
로마 시민의 수가 적어지면서 군대에 야만족들을 많이 쓰기 시작했고, 로마가 이들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야만족 군인이라도 없었으면 로마는 더 빨리, 쉽게 무너졌을 것입니다.
다른 의견으로는 그리스도교가 있습니다.
고전 문화에 심취했거나, 종교의 비합리주의에 반대하는 지식인 층, 또 그리스도교를 배척한 이교 사상가들 사이에서 이 의견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군사적 열의를 침체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또 수도원주의로 소중한 병력 자원을 빼냈으며 우수한 인재들이 성직자가 되고 타 종교들에 불관용하고 내부적인 교리 분쟁을 일삼음으로써 위기 때 국가를 지키는 데 필요한 내부의 통일을 파괴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인들이 군 복무를 거부한 사례들이 있었기는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교 황제들, 주교들은 도시를 방어하는데 앞장섰었고, 성직자들은 적극적으로 세속사에 참여했었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세속을 등지고 수도원으로 들어간 건 그리스도교가 아니더라도 삶의 압박에서 도피하고 싶어하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도원이 없었더라도 그런 식의 피난처를 찾았을 거라고 보고요.
그리스도교 교리 투쟁이 제국에 많은 해를 끼친 건 사실이지만 그리스도교가 없었더라도 다른 투쟁이 발생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 밖에 부수적인 원인들로는
연속성을 가지고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들, 야만족의 침공을 꼽습니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으로는
제국의 지리적 구조, 인력 부족, 경제적 취약성, 고대 과학기술의 저급한 수준,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치문화, 고대 사회의 귀족적 가치관을 꼽습니다.
제국의 지리적 구조의 경우 너무 크고 취약한 국경 지대를 갖고 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로마시도 침공하기 쉬운 지대이기도 했고요. 콘스탄티노플의 경우 방어에 최적화된 구조라 더 오래 버틴 것도 있습니다.
인력 부족의 경우, 병력 자원과 경제 활동 유지에 필요한 만큼의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제국 후기 전체 인구가 감소하지는 않았지만 늘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게르만족에게 더 의존하게 되었는데요. 게르만족의 출생률이 엄청났던 듯 합니다.
(이 당시 야만족 여성들이 거의 인력 제조 공장 수준으로 평생 출산을 반복하다 죽는 존재였던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네요.)
경제적 취약성의 경우, 로마 초기에 주변국을 약탈해 털어먹는 걸로(정복 전쟁을 통한 전리품 유입) 경제를 유지시켰던 문제를 말합니다. 제국 후기에는 더이상 털어먹을 야만족이 없었습니다. 야만족은 가난했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털어먹기엔 너무 강했습니다.
로마 경제를 살리려면 무엇인가 생산해서 교역해야 했는데, 로마 농업은 큰 이익이 나지 않았고, 로마의 귀족들은 사치품을 자꾸 외국에서 사들이면서 로마의 귀금속들을 고갈시켰습니다.
이 귀금속 감소로 인해 고대의 화폐와 재정 체계가 흔들렸습니다.
정부는 군대를 유지하고 관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고정된 지역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농민들에게 세금을 걷는 것이 가장 만만했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가혹한 세금에 농민들은 굶어죽거나 도망쳤고, 남은 농민들은 더 가혹하게 착취당했습니다.
도시화가 덜 된 서방에선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했습니다.
동방은 그나마 교역지의 중간 통로로써 빼먹을 게 있기라도 했거든요.
고대 과학기술의 저급한 수준도 원인입니다.
사람과 가축의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킬 기계류나 동력장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치문화도 원인이죠.
야만족의 침략을 받는 상황에서 무수한 내전과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세금을 피했는데, 가난한 농민들이 가장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고대 사회의 귀족적 가치관도 원인입니다.
귀족들은 독립된 권력을 갖춘 부유한 대지주가 되어 전쟁이나 공무에 참여하지 않을 땐, 문화 생활이나 즐기며 편안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 여겼습니다.
귀족들은 노동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지식인층이 노동을 하지않아 과학 기술 혁신도 없었습니다.
귀족들은 오히려 과학 기술 혁신이 일어나지 않아서, 하층민들이 자신에게 의존해서 더 큰 혜택을 입었습니다.
고대의 도시는 귀족들의 정치 권력을 행사하고 후원자로서의 지위를 과시하는 데에 많은 역량이 쓰였는데요.
이러한 권력과 명예와 영광에 귀족들이 정신팔려있던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공화정이 약화되고 황제의 권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많은 귀족들이 공직을 포기하고 화려한 시골 대저택에서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세금을 피할 사적 군대를 만들어 자급자족하는 세미 장원을 만들어 지냈습니다.
나중에 출세한 이들도 귀족을 흉내냈습니다.
이렇게 제국은 국민의 중간층과 하류층을 약화시키고 소외시키며 문제가 커졌습니다.
지중해를 감싸안은 로마제국은 이런 다양한 부수적인 원인들과 근본적인 원인들이 얽혀 복잡한 방식으로 작용한 결과 변형되어 쪼개지거나(서방) 비잔틴 제국으로 변모하였습니다.(동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