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근현대사를 읽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냉전 해체 이후 동유럽 영화들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저자는 이 영화 소개에도 문제가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스니아 전쟁(1992~1995)의 비극과 모순을 잘 표현해낸 영화 <노 맨스 랜드>를
한국 영화 소개 전단지에서는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버리는 웃음의 지뢰밭”이라는 문구로 표현한 것입니다.
비극과 모순을 날카롭게 그린 작품이 ‘코미디’로 뒤바뀌고, 민족주의라는 ‘지뢰’를 잘못 건드리면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보스니아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물론 풍자적인 요소가 있었으나 코미디로 퉁쳐버리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또 <레들 대령>에 대한 영화평도 우리의 동유럽 역사 이해가 얼마나 얕은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보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레들이라는 실존인물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러나 영화평은 레들의 ‘애국심’은 문제 삼으면서도 그 애국심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역사적 맥락은 놓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레들의 애국심이 문제가 됐던 것은 레들이라는 한 개인 때문이 아니라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 민족 헝가리 출신이기 때문이라 하는데요. 레들이 맹목적으로 황제에게 충성하는 모습은 헝가리 ‘민족’입장에서 보면 반역이고 배반이라 합니다. 영화를 만든 서보 이스트반 감독은 레들을 반영웅으로 그려 그를 질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에 찬 시선으로 레들이라는 불안한 영혼의 비극적 삶을 쫓습니다.
레들의 삶 자체가 제국 지배의 근본적 모순과 위선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되어 이 영화가 의미있는 것이라 하네요.
그러나 한국의 영화평에서는 헝가리라는 말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을 정도로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저자는 동유럽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에서 한국만큼 동유럽의 역사적 질곡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나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일제 침략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문에 피를 흘려야했듯이, 동유럽도 마찬가지로 쉴틈없이 전쟁터가 되고 원치않은 전쟁에 휘말려야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동유럽과 서유럽이 다른 역사적 행로를 걷게 된 것은 4세기 동로마,서로마 제국의 분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11세 동,서 기독교의 분리가 있었고, 1989년까지 이어진 철의 장막도 있었습니다.
동유럽을 ‘2등 유럽’이라고 보게된 때는 16세기부터입니다. 서유럽이 근대 세계체제의 승자가 되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로마제국과 기독교가 분리될 때까지만 해도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에는 위계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동유럽 연구자들은 같은 로마제국, 기독교라는 동근성을 가짐에도, 왜 동유럽이 서유럽에 비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후진적이 되었는 가라는 문제의식에 천착해왔다고 합니다.
내재적 요인파는 특권에 집착하는 귀족 계급, 배타적 민족주의, 불안정한 정치체제같은 요인을 지목합니다.
외재적 요인파는 외세의 침략을 침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봅니다.
특히 날선 반응을 보이는 건 오스만 제국 문제입니다.
오스만 제국! 대체 뭔 짓을 한 건지 궁금해지네요. 계속 읽어보겠습니다.